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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5일 금요일

순간이 중요하다

(본 칼럼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영화를 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스타트랙 : 더 비기닝” 의 네티즌 평점은 네이버와 다음 모두 대략 9.0 수준이다.

네이버 평점은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 취향 문제이고 영화의 흥행성 면에서는 일단 네이버 평점을 믿어도 된다. 최소한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들에 있어서는 “알바” 들이 조작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아무튼, 네이버 평점이 9.0 이라는 점수는 매우 상위권의 점수이다.

대중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수준이란 뜻이다.



<스타트랙>


그런데, 이 “스타트랙 : 더 비기닝”을 보는 도중에 상당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엔터프라이즈 호가 처음 출격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인 “커크” 가 벌칸과 인간의 혼혈인 “스팍” 의 시험에서 시험 조작을 통해 시험을 통과 한 후, 전체 회의(?)에서 서로 논쟁 중일 때, 벌칸에서 구조 신호가 도착한다. 이에 따라 사관 학교의 모든 생도가 출발을 하게 되었으나, 주인공 “커크”는 정학 중이라는 이유로 “엔터 프라이즈” 호에 탑승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 군의관이자 친구의 도움으로 무슨 주사를 맞고 “꾀병(?)” 을 앓으면서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하게 된다.

<엔터 프라이즈호>


개인적으로 상당히 웃겼던 부분도 이 때 나오는데, 엔터프라이즈호가 발진할 때 조종석에 앉은 러시아 생도가 음성 비밀번호 입력을 러시아 발음 대로 “윅토르 윅토르” 라고 했다가, 컴퓨터가 못 알아듣자 다시 고쳐서 “빅터 빅터” 라고 애써 발음하는 장면부터, 계속 혀 꼬인 러시아 발음으로 안내 방송을 계속하는 장면, 주인공 커크를 승선시킨 군의관 친구가 “꾀병(?)”의 치료를 위해 해독제를 놓아주지만 손이 커지거나, 혀가 꼬여서 발음이 이상해지는 등 개그 장면이 지속되는 장면 등이 계속된다.

극장안은 폭소 또는 여기저기 킥킥 거리는 소리로 이 부분이 지속되었다.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 부분은 다시 잘 생각해 보자. 시나리오가 “거의 다”인 영화라는 매체에서 이 부분의 내용은 메인 스토리 상으로는 상당히 “아무것도 없는” 부분이다. 커크와 스팍의 감정 대립이 있었으나, 엔터 프라이즈호를 타고 벌칸 지역으로 출발을 한다는 부분이다.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이 정도의 출발 씬으로 구성하면 끝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커크는 잠입을 하고 엔터프라이즈 호는 장대한 음악 속에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출발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네로” 가 있는 곳이다. 정도면 끝나는 부분이다.


당신이 이 영화를 찍은 J.J 에이브람스 감독이라고 상상해 보자. 
어떤 출발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 현재 영화에서 연출된 바로 저 장면에서 소름이 돋는 것이다.

모두 감격적인 표정으로 엔터프라이즈호의 출발을 축하하는 밋밋한 장면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처음에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 부분이 “지루할 수 있다” 라는 판단으로 “유머 코드”를 넣은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별 것 아닌” 이 장면에서 “템포”를 잃지 않고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것은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 에서 처음 논두렁에서 “용의자”로 생각되는 자기 동료 형사를 만났을 때, 갑자기 드롭킥을 날리는 “애드립” 과는 다르다.

<’살인의 추억’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송강호의 ‘드롭킥’ 장면>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애드립과는 달리, 저 장면은 분명히 시나리오 단계에서 검토되어 꼼꼼하게 체크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모든 순간 순간에서의 유저들의 감정의 기복을 잘 체크하고 있을까? 
또는 그런 능력이 될까?

영화 시나리오가 아무리 전체적인 이야기가 잘 짜여진 것이라도 “순간 순간”에 관객의 긴장감이나 몰입감을 놓치면 그 영화는 “재미없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영화의 이야기는 뭐 아무것도 없더라도 관객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게임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 순간 순간이 재미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이것은 그냥 한 스테이지가 재미있다거나, 몬스터가 다양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거나, 스킬이 새롭다는 것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저들이 전체적인 게임의 맥락을 즐기는 “감정 기복선” 상에서 지금 이 순간 어떤 목표를 가지고 또는 어떤 재미에 빠져 있는 단계에 와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전체적인 목표 곡선 상에서 현재 순간의 감정을 “미분” 해서 이 미분 순간에 유저들이 충분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 순간에 충분한 재미요소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가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연속이 아니면 미분 불가능이니 뭐니 너무 따지지 말자. 전체를 생각해서 한 순간의 맥락이 이어져야 한다는 면에서 미분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냥 각 레벨에서 즐길거리가 무엇이 있고, 갈 수 있는 스테이지가 무엇이 있는지를 단순 나열한 Play Map 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이를 보완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체적인 맥락을 따지는 것은 나름대로 해왔다고 생각한다.

마치 영화 전체의 스토리가 뭐지? 라고 말하며, 이 전체 스토리가 괜찮을까? 만을 매번 검증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물론 전체 스토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체 스토리보다는 그 장면의 연출이 충분히 긴장감과 템포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전체 맥락만을 자꾸 본다.

이래서는 “디 워” 같은 작품만 나오기 쉽다.

지금이라도 각 레벨에서 레벨업을 했는데, 스킬 포인트는 쌓였는데, 찍을 수 있는 스킬이 없다든가, 목표할만한 스킬이 없는지 봐야 한다. 그 때 유저들이 가장 갖고 싶은게 무엇인지를 계속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엔터프라이즈호가 모두 감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출항하는 장면이 안 나오고,
조금이라도 지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때 템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삽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PM 이나 PD 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어느 순간이 “지루” 한지는 안다.

관객의 입장에서 순간을 미분해서 보고, 충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건의하자.

전체도 중요하겠지만, 전체보다 더 중요한 순간을 우리는 놓치고 있지 않을까.





- Valcu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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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curia : 올엠 개발 총괄 김영국 이사





늘 ‘게임’속의 세상과 환상을 쫓는 그는 생이 다할 때까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장인으로 남고 싶어 한다. 21세기 문화의 중심이 될 ‘게임’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은 그는 항상 꿈 꾸는 소년과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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